문화·교육 [민동필박사의 교육칼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정말 머리가 나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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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정말 머리가 나쁜 걸까?
많은 부모가 필자에게 묻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데 머리가 나쁘기 때문 아니냐고. 그러면 필자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돌아오는 답은, 가르쳐도 이해를 못하고 또 공부하라고 해도 게임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르쳐도 이해를 하지 못하면 머리가 나쁜 걸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게임을 하면 머리가 나쁜 걸까?
만일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머리가 좋은 거라면, 세상은 모든 것이 성적순이라야 한다. 상위권 대학을 나온 학생이 사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학생은 피라미드 아래에서 허덕여야 한다. 초등학교도 다닐 수 없었던 학생은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 학벌과 스펙이 많은 것을 좌우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학벌과 스펙이 효과를 발휘하는 때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때이지 자기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아니다. 필자의 예에 자주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를 생각해보자. 잡스가 애플을 만들 때 학벌이 필요했던가? 스펙이 화려해서 애플을 만들 수 있었던가? 아니다. 학벌과 스펙은 타인의 선택을 받는데 필요한 거지 자기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회는 왜 학벌과 스펙을 요구하는 걸까?
학벌과 스펙은 말 그대로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잘 배워 익히고 또 사회가 요구하는 학사일정 이외의 필요한 다른 분야를 섭렵했을 때 쌓을 수 있다. 즉, 회사 등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착실하게 잘 배워 익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마약 탐지견이 필요해서 몇 마리의 개를 모아놓고 마약 탐지 훈련을 시킨 후 훈련을 잘 받은 개를 선택해 현장에 투입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과 스펙은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잘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당신이 선택해주면 나는 충실한 개와 같이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를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필자의 표현이 너무 극단적인 걸까? 대기업이 지원서류를 늘어놓고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내는 걸 보면, 또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쳐 내는 현실을 보면 결코 극단적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간 사회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반대로 사회의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낮게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는 어려서부터 시작된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머리가 좋은 학생으로 평가받고 학교 공부를 어려워하는 학생은 머리가 떨어지는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머리가 좋다고 평가받은 학생은 상을 포함해 많은 이득을 얻고 머리가 나쁘다고 평가받는 학생은 많은 불이익의 대상이 된다. 친구들로부터 공부 못한다고 무시당하기도 하고, 교사의 구박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학생을 사회가 요구하는 도구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즉, 사회가 잘 써먹을 수 있도록 잘 길들여지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누는 것이 교육의 현실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회현상에 앞의 길들여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점을 대입해 보면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게 결코 머리가 좋다는 걸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길들여지는 두뇌이기 때문에 두뇌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교육은 학생을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독립된 삶이 아닌 잘 길들여진 동물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잘 길들여지는 학생’은 똘똘한 학생으로 추켜세우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도태를 부추긴다. 나아가 마약 탐지견의 경우처럼 탐지 능력이 뛰어난 개의 가치가 일반 사람보다 높게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는 점은 사람의 가치를 개와 다르지 않게 여긴다는 의미도 된다.
개보다 못한 대접이 이래서 생긴다.
이 모든 것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배워 익히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가르쳐주는 지식을 배워 익힐 수 있는 두뇌를 마치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뛰어난 두뇌능력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 통념이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평가하고 나아가 사회에 부합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한다.
필자에게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이 개보다 못한 놈들’이라며 매질을 하던 교사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체벌을 가하는 교사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가 이런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필자의 아들이 한참 자란 후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하며, 교사로부터 ‘You are so stupid!’라는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했던 걸로 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교육은 학생의 두뇌발달이 아닌 지식 습득을 통해 사회가 써먹을 수 있는 도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두뇌발달을 체계적으로 이뤄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이라는 현실의 벽에 갇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부 못하는 아이는 머리가 나쁜 아이로 낙인찍는다. 이제 이런 낙인을 지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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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
· PonderEd Education 대표
· Infonomics society 자문위원
· World Congress on Special
Needs Education 학회장
- 자세한 공부 방법은 필자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kr.PonderEd.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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