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민동필박사의 교육칼럼]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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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이번 여름 필자의 곁에 잠시 머물렀던 아이가 있었다. ADHD가 있고 욕설과 폭력이 심해 학교를 옮겨야 했던 아이다. 하지만 필자의 눈엔 그저 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다. 의사소통 방법으로 폭력과 욕설을 사용하는 점은 분명 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요소다. 또 아이의 폭력과 욕설로 인해 희생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아이가 받아야 벌도 당연한 거다. 하지만 아이가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낙인을 찍고 그 낙인으로 아이를 분류한다는 건 필자의 관점에서는 불공평하다. 이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아이에게 벌보다 더 심한 벌이 아닌 벌을 준다. 아이에게 낙인을 찍고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아니, 단순히 바라만 보는 것도 아니다. 낙인으로 아이를 판단한다.
필자와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이에게 많은 걸 물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는 이미 ‘머리가 떨어지는 아이’, ‘사고뭉치’ 등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있었다. 주변이 이렇다보니, 아이 자신도 스스로를 ‘떨어지는 아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정말 떨어지는 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아이는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과 비슷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아이 스스로 그 길을 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현재의 교육이 아이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ADHD나 자폐와 같이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아이들은 말 그대로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도 달라야 한다. 생각하는 방법에 맞춰 방법을 바꿔야 교육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구상에 이런 교육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폭력과 욕설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려 한다. 달리 말하자면 폭력과 욕설은 아이들이 자기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보내는 메시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침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방법이 없으니 더 강한 폭력과 욕설을 사용하는 방법 말고는 남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낙인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이 아이들에게 올린다.
자폐나 ADHD 등과 같은 낙인은 ‘두뇌 발달이 안 된 아이’, ‘어울리면 안 되는 아이’,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이런 낙인이 찍히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 벌어진 일을 가지고 설명을 이어가겠다.
필자의 곁에 머물렀던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를 떠나야할 상황까지 갔다고 한다. 문제의 발단은 주변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학교 선생님에게 아이가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고 다닌다는 제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는 이를 문제 삼아 아이를 질타하고 학교에서 내보내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단다. 하지만 아이는 결백을 주장했고 부모가 나서서 주변의 보안 카메라를 분석해 아이의 결백을 밝혀 상황이 일단 정리되었다고 한다. 모함을 당했던 거다. 여기에 학교는 아이에게 찍힌 낙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왜 학교는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잘못을 지적했던 걸까?
필자의 해석은 간단하다. 현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아이의 두뇌 발달은 어렵다. 한 마디로 교육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다. 교육의 현장에서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는데,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교육자로서는 아이가 눈에 가시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교육 또는 교육 기관의 목적은 학생을 성공적으로 가르치는 데 있다. 그래야 학교로서 또 교육자로서 자부심과 함께 학교 지원금이나 월급 등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데, 가르칠 수 없는 아이가 있으니 당연히 가시방성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다. 쫓아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거다.
아이를 포용하고 북돋아 교육을 통해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교육자와 교육기관은 신뢰를 잃는다. 교육자도 교육기관도 신뢰가 없으면 존속할 수 없다. 그러니 교육을 따라오지 못하면 일찍 쳐내야 하는 게 교육자와 교육기관이 자기들의 시스템을 지키는 방법이다. 만일 이들을 가르쳐 변화시킬 수 있다면 결코 학교에서 밀어내지 않을 거란 뜻이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니 밀어내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여기에 자폐, ADHD 등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쫓아낼 가장 좋은 낙인으로 작용한다.
위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물론 캐나다는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필자의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낙인은 존재한다. ‘당신의 아들은 두뇌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고용을 했는데...’라는 말을 필자가 한인 사회의 한 단체 수장이라는 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능력의 차이가 나 내보낸 것도 아니고 고용하는 과정에서 아예 낙인을 찍었다는 뜻이다.
사회가 가르칠 능력이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찍어놓은 ‘너는 머리가 나빠’ ‘넌 자폐라 두뇌 기능이 떨어져’와 같은 낙인을 지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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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
· PonderEd Education 대표
· Infonomics society 자문위원
· World Congress on Special
Needs Education 학회장
- 자세한 공부 방법은 필자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kr.PonderEd.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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