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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민동필박사의 교육칼럼] 인간의 삶이 동물의 삶과 다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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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동물의 삶과 다른 이유는?

사람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외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런데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어려서는 인기가 있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처럼 되는 것을 바라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자신의 현실에 맞춰 취업이라는 이유로 통일된다. 물론 삶을 살아가면서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정말로 먹고사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공부를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을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것이 삶의 전부이자 이유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이유에 ‘잘’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붙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잘 살고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일까?

직장이라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봉급으로 연명해 가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정글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이 오히려 더 생동감 있는 삶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하며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또 경쟁에서 이겨야 다음 세대를 통해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진화를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갇힌 울타리 안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또 주는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삶에서 발전이나 변화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매일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시계의 추처럼 반복되는 삶은 진화가 아닌 틀에 갇힌 사육되는 동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길들여져 사육되는 동물들에게는 생존마저도 자신의 결정이 될 수 없다. 주인이 귀여워 해 주면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지만 괴롭히면 괴롭히는 대로, 쫓아내면 쫓겨나는 대로, 그리고 죽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결정하는 삶을 나 자신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삶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내 삶을 내가 살기위해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한다. 사람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경우에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능동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고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때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야생의 동물들에게는 배고픔과 생존 그리고 번식이 움직임의 원동력이다. 사자가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듯 동물적 본능은 생존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번식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인간의 삶에서 배고픔, 생존, 그리고 번식과 같은 동물적 본능에 의지한 능동적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이러한 동물적 본능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성질이기에 나 스스로 결정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결정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 있는 두뇌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생각은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이 아닌 눈앞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분석하여 새로운 도구 또는 개념을 창조하며 나아가 미래 또한 예측할 수 있는 두뇌능력이다. 한 예로 애플이라는 회사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가 손으로 쓴 필체를 컴퓨터에 접목함으로서 글꼴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기존의 컴퓨터 회사들을 제치고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듯,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과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사람만의 고유한 두뇌능력이고 사고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뇌능력은 가능성을 예측하고 실현함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존이라는 본능보다 사고력이 우선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로 인해 생존의 확률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뜻이다. 

직장을 잡기위해 또 직장을 잡아 잘 먹고 잘 살기위해 노력하는 삶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라 볼 수 없다. 직장을 잡기위해 직업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공부를 하면 후에 비슷한 지식과 기술을 익힌 사람들과 제한된 수의 취업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무장해서 졸업하는 후배들에 의해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물과 다른 사람으로서의 의미 있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동물적 본능이 아닌 사고력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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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 

PonderEd Education 대표 

Infonomics society 자문위원

- World Congress on Special Needs Education 학회장

- 밴쿠버 늘푸른 장년회 교육담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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