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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문학의 거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이 공식을 잘 따른다. 어둠 속에 도사리는 악은 쉽사리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관객은 주인공의 어께 너머로 그 모습과 악의를 헤아려야만 한다. 이렇게 고조된 감정은 악당이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오는 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폭발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하지만 19년 개봉한 미드소마는 흥미롭게도 어둠이 아닌 빛을 통해 공포를 연출한다. 예고 없이 다니에게 불행이 닥쳤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동생이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그녀가 의지할 곳은 남자친구 크리스찬 밖에 없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떠나갔다. 다니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그럴수록 의지할 곳 없는 현실이 더욱 무서워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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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스웨덴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


다니에게 닥친 참사 때문에 크리스찬은 차마 이별을 고하지 못한다. 그녀를 떼어놓고 친구 펠레를 따라 스웨덴으로 여행을 가려 했지만 이를 알아버린 다니는 결국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펠레의 고향, 스웨덴 헬싱글란드에 위치한 작은 마을 호르가에서 90년에 한번 벌어지는 여름 축제 ‘미드소마’.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들판 위에서 사람들이 꽃을 따고 봄처녀들이 춤을 추는 동화같은 호르가 마을엔 숨길수 없는 불길한 바람이 분다.


악역을 어둠 속에 감추는 대신 미드소마는 그들을 밝은 태양 아래 그대로 보여준다. 노인이 스스로 절벽에서 투신해 죽는 북유럽식 고려장 ‘에테스툽’, 산채로 등뼈를 따고 잔인하게 처형하는 ‘피의 독수리’, 심지어 기형아에게 신통력이 있을거란 믿음에 의도적인 근친혼으로 아이를 만들기 까지 하는 등 전통과 공동체라는 명목 아래 호르가의 사람들은 비인륜적이고 광기 어린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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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항상 웃고 꽃은 향기로운 정다운 산골마을] 
 

희고 깔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백주대낮에 웃는 얼굴로 미친 짓을 저지르는 이 ‘뻔뻔한’ 연출은 불쾌하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의외로 미드소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족’ 이다.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호르가의 사람들은 외부인에게는 차갑지만 서로에겐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가족이다. 누군가 아파할 땐 옆에서 같이 신음하고, 누군가 즐거울 땐 같이 웃는 그들은 기괴할 정도로 한 몸 같다. 가족을 잃은 다니는 남자친구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소외되어 멀어지고 점점 움츠려 들어 간다. 그런 그녀가 미드소마 축제에 참여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점차 마음을 열어 가고 마을 사람들 역시 그런 그녀의 아픔을 알고 그녀를 받아들이며 ‘5월의 여왕’으로 추대하기까지 한다. 축제의 중심에 선 다니는 더이상 외부에서 온 산 제물이 아닌, 호르가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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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가에선 모두가 가족입니다]
 

영화 마지막, 꽃과 풀로 장식되어 부풀어오르듯 만발한 복장을 걸치고 불타는 제단 앞에서 신음하며 뒤뚱거리는 다니의 모습은 마치 괴물과도 같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일원이 된 그녀 또한 괴물이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영화 내내 울상짓고 눈물 흘리던 다니는 호르가의 옷을 입고 호르가와 함께 선 뒤에야 마침내 활짝 웃게 된다. 이것도 나름 해피 엔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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