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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한국인 영어,명문대 출신도 원어민 앞에선 꿀먹은 벙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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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번역·암기 위주 학습에 너무 익숙 

영어권 문화 이해하고 회화능력 키워야


"아이들이 친구들과 영어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부럽죠. 나도 저렇게 영어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한을 풀어줬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편의점을 운영하는 윤호영씨는 막상 생활영어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자신의 영어실력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TV뉴스도 챙겨보지만 이민생활 20여년이 흘렀어도 영어만큼은 답보 상태다.

이민 50년차 원로는 일부 한인 단체장 영어 연설을 들을 때면 언제나 성에 차지 않는다. "엉터리 영어실력을 보고 비한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알겠냐"며 "제발 단체장만은 영어실력을 갖춘 사람을 뽑자"고 주장한다. 그는 대학교육까지 10여년을 머리 싸매고 공부했지만 영자신문은 고사하고 아이들 동화책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영원한 숙제다. 입시와 취업 등을 위해 남녀노소 막론하고 영어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러다보니 영어교육은 한국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많은 금액(2016년 기준 약 6조)을 차지한다. 그만큼 우리는 영어에 절박한 심정이다.

2020년 기준 세계 수출시장 1위 품목을 77개나 보유한 한국이지만 영어 앞에서만은 한없이 작아진다. 중고생 학업성취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지만 대학생 영어 실력만큼은 평균을 맴돈다. 2019년 기준 한국인의 토플(TOEFL) 성적 평균은 171개국 중 87위, '말하기'만 놓고 보면 132위다.

이 정도면 그저 노력이 부족했다고 보기 힘든 결과다. '입시는 전쟁'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민족이 교과목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영어를 소홀히 하지 않았을텐데 의외의 결과다. 한국인의 영어실력은 이 정도가 한계일까?

다행스러운 사실은 우리가 처음부터 영어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영어를 꽤 잘했다는 게 역사의 기록이다. 1901년 일본외교관 시부노 준페이가 쓴 '한반도'에는 주한 영국영사가 본국 정부에 “조선사람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어학자로 서울에 외국인이 들어온지 불과 14년도 안됐지만 영어의 능숙함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가히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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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관립영어학교 육영공원의 수업 모습

1883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절단(보빙사) 일행이 현대식 영어교육기관의 설치를 건의함에 따라 고종은 1886년 9월 관립최초의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을 설립했다. 당시 영어교육 원칙은 원어민에 의한 ‘영어로 쓰고 말하는’ 몰입식 교육이었다. 육영공원 최초의 영어교사였던 호머 헐버트는 “조선 학생들의 영어 구사 능력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구한말 영어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양반 자제로 한문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이들이 한자와 어순이 같은 영어문법 또한 쉽게 받아들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당시 우리가 영어를 원어민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했다는 것이다. 1908년 영어교육 열풍을 타고 나온 영어교재 중 하나인 '아학편'은 한자 한 글자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와 우리말 발음을 함께 적었다. 이때 현대 한국어에 없는 글자를 사용 원어민의 발음을 최대한 살린 것이 돋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당시 영어를 익힌 조상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10개월 정도면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으로 100년이 흘렀다면 현재 한국인의 영어실력은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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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영어교재 '아악편' 내용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화기에 불었던 자주적인 영어교육은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합병한 후 이듬해에 조선교육령을 제정하면서 암흑기를 맞는다. 식민지 조선의 영어교육은 일본의 영어교육정책과 궤를 같이했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시대 초부터 영학이 발달했지만 1900년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신문명을 받아들인다는 태도를 바꿔 일본 중심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이에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 전문원서를 읽을 정도의 어학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학교 어학교육의 목적이 되었다. 번역 위주의 영어교육에 치중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념은 식민지 한국에도 큰 영향을 줬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는 순간이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은 일본이 만들어놓은 철저한 번역 위주의 영어공부법을 고수했다. 결국 우리는 영어로 쓰인 글을 보면 대략 해석은 가능하지만 외국인과의 대화에서는 도대체 무슨 단어인지를 모르겠고 겨우 들렸다 싶으면 바로 다음 단어가 안들려 전체적인 내용을 놓치는 상황에 놓였다. 1960년대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메들리삼위일체', 1970년대 송성문의 '성문영어', 1980년대 장재진의 '맨투맨영어'. 모두 일본의 대학에서 영어를 배웠고 또 그들에게서 영어를 익힌 영어교사들이 쓴 교재들이다. 성경처럼 받들어 밑줄 긋고 달달 외운 혹독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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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표 영어교재 왼쪽부터 1960년대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메들리삼위일체', 1970년대 송성문의 '성문영어', 1980년대 장재진의 '맨투맨영어'.

영문법책 옆구리에 꿰고 원서며 영자신문 좀 읽었다는 명문대 출신들도 정작 원어민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벙어리가 되는 진기한 현상을 수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국어의 어순이 영어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편리한 핑계를 댔다. 실제로 영어를 가장 잘하는 비영어권 국가는 항상 네덜란드와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로 대부분 게르만어족을 포함한 인도-유럽어족 국가들이긴 하다. 한국어는 글자의 발음과 어순 등 거의 모든 점에서 영어와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과 달리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영어실력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모국어의 간섭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한국어와 같은 우랄어족(語族)에 속하는 핀란드가 항상 전 세계 비영어권 성인 대상의 영어능력지수 조사에서 10위안에 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어순 차이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결국 그동안 한국인은 영어를 비효율적으로 공부해왔으며 학습방법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1990년대 이르러 세계화 시대를 맞아 시험 성적만 중시하는 교육 환경과 그에 따른 문법 위주의 교육을 문제로 비판하는 의견과 함께 영어 조기 교육이 부각됐다. 이에 정부는 1997년부터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각급학교 영어교과서를 회화 중심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회화 교육에서조차 문법적으로 옳은 문장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영어수업이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그에 따른 학습 계획을 세울 것을 조언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어교수법(TESL)과 언어학을 가르치는 김혜리 교수는 “영어도 일상적인 표현과 격식을 차릴 때 쓰는 표현이 다르다”면서 “무엇을 위해 영어가 필요한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라 학습 전략을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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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인은 특히 읽기·쓰기보다 듣기·말하기를 더 어려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어와 한국어 소리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영어학자 이문장 교수의 주장은 시사점이 있다. 이 교수는 "한국어와 영어 소리에 차이가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정확한 발음도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가 한국어의 소리 세계에만 너무 익숙한 것을 원인으로 봤다.

영어는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고 외운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 언어능력은 상대방과 소통함으로써 향상된다.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영어정복의 단계 이르고자 할 경우에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화와 정서의 이해도 수반돼야 한다.

영어공부에 왕도는 없다고 했다. 최고 방법은 바로 영어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민자들은 최상의 환경 조건을 갖췄다. 이민 1세대들은 대체로 말하는 게 제일 어렵다. 어렵겠지만 내 영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걱정하지 말고 틀려도 좋으니 부담 가지지 말고 말하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원어민이 어떤 음절 또는 단어에 강세를 두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고 따라 해보는 것도 긴장해 얼어붙은 우리 혀를 풀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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