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폭스, 그가 남긴 발자국은 지금도 달리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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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영상 캡처
해마다 열리는 ‘테리 폭스 런’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이민자와 원주민까지, 모두가 함께 달립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금 마련의 수단이 아닙니다.
“희망은 멈추지 않는다”는 믿음의 실현입니다.
“그저 한 쪽 다리로 달린 아이였다고요?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BC주 포트 코퀴틀람. 평범하고 소박한 이 도시에서 1958년 7월 28일,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테리 폭스(Terry Fox).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소년이었다. 키가 작았고, 운동도 처음엔 남들보다 느렸다. 하지만 묵묵히 훈련했고, 시간이 흐르며 농구부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랑스러웠고, 또 끈질겼다.
“테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의 고등학교 코치였던 밥 맥길의 말이다. “농구공이 손에서 미끄러져도, 그는 수천 번을 다시 던졌죠. 처음부터 그는 ‘될 때까지’ 하는 아이였어요.”
18세였던 1977년. 오른쪽 무릎에 처음 느낀 통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형외과 검진 결과, 그는 골육종(osteosarcoma)이라는 희귀 뼈암 진단을 받는다. 치료를 위해선 다리 절단이 불가피했다.
“나는 오른쪽 다리를 잃었지만, 내 삶 전체를 잃은 건 아니었다.”
병실에서 그는 종종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곤 했다. 의연하게 보이려 애썼지만, 침묵 속엔 분노와 슬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강렬한 꿈으로 바뀌었다.
다리를 절단한 지 불과 몇 달 후, 그는 인공다리를 착용하고 조깅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 몇 걸음도 버거웠다. 하지만 그는 매일 거리를 늘려갔고, 결국 하루에 5km 이상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질문이 자리했다.
“내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다면, 암과 싸우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하나의 결심이 되었다.
“나는 캐나다를 달려서 암 연구 기금을 모으겠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작은 일기장을 꺼내 단어를 써내려갔다.
그것은 계획이자 약속이었고, 그 이름은 바로 Marathon of Hope – 희망의 마라톤.
캐나다의 동쪽 끝, 뉴펀들랜드 주에서 시작해 서부 밴쿠버까지.8,000km를 달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약속.
하지만 누구도 몰랐다.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이, 곧 전 세계 수백만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여정이 되리라는 것을.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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