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국 – 소동파의 ‘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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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복국을 먹으러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부산 해운대... 부산에 가면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습관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하여 바다로 향한다. 해운대뿐만 아니라 차츰 세월이 흐르면서 북쪽으로 미포, 달맞이고개, 청사포, 송정, 대변항, 기장까지의 해안 도로를 좋아하며 이야깃거리도 많다. 이곳은 대변~죽성 간 도로(영화 ‘친구’ 촬영지) 설계, 부산외곽 고속도로(기장 구간) 설계를 하면서 오랫동안 흔적과 추억이 있으며, 나에게 복국의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운대 옆 작은 미포항을 바라보며 앉은 ‘할매집 원조 복국집’의 투박한 복국 국물과 콩나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육수도 아닌 맹물에 복어 몇 토막 넣었을 뿐인데 깔끔한 맛은 중독성이 강한 마법의 국물이었으며 콩나물만 건져 고추장에 살짝 묻혀주는 할머니의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아삭함과 양념 맛이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지금도 입속에서 아작아작 소리가 날 정도의 과거 생각으로 다시 찾곤 한다. 해운대 주변에는 금수복국, 초원복국 등 유명한 복국 명가의 노포가 있다.
복어는 집에서 요리하기에는 위험한 생선으로 내장과 알, 핏속에 호흡을 마비시키는 독성이 있어 전문가의 손질이 필요하다. 특히 맛, 냄새가 없는 치명적인 맹독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위험한 어류임에도 부득부득 다 발라내면서 먹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 일본, 중국뿐이고 한국과 일본에서만 복요리 자격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어떤 미식가들은 극소량의 독성으로 손발이 저리고 목덜미가 뻤뻤해지는 쾌감을 즐긴다 하고, 복 요리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먹어도 바보, 안 먹어도 바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지만 절대 추천할 일은 아니다. 중국 시인 소동파는 복사꽃 서너 가지 피고, 봄 강물이 따스해지면 바로 이때가 황복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무렵이라 “그 맛,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 하였다. 국내에서도 복어에 대한 글이 많이 있다. 소동파를 홀린 복어가 바로 황복이다.
황복은 바다에서 자라다가 알을 낳으러 강으로 올라오는 어종으로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어 보호어종으로 지정되어 허가받은 어부만 포획할 수 있다. 배 부분에 노란색을 띠고 4~6월 경에 강으로 올라오는 데 그중 임진강 황복을 제일로 치며 파주, 적성 주변이 유명하다. 20여 년 전 도로 교량사업으로 자주 방문하던 적성의 한 소박한 식당에서 만난 황복은 그 의미만으로도 스토리가 되었으며 특히 얇게 썬 황복회 한 조각 한 조각이 글자가 비치는 습자지처럼 손질되어 미나리와 함께 먹는 호사스러움은 이제는 거의 보기 드문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1Kg 남짓 되는 자연산 황복을 먹던 시절이 있어 나는 재수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복어는 주로 복국이나 회요리로 만들어진다. 살은 다른 생선과 달리 닭고기처럼 쫄깃한 맛이 나며 껍질도 부드러우면서 탱글 한 식감이 훌륭하고 지방이 적어 탕으로 끓이면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복어요리 중 최고로 치는 복어회는 씹히는 식감과 싱그러운 담백함은 색다른 맛을 제공하고 여기에 미세한 단맛과 향은 압도적이다. 그래서 복어회는 초장을 절대로 찍어 먹지 말아야 하며 간장·고추냉이도 찍지 말고 그냥 먹어보기를 권한다. 다만 복어회 특유의 풍미와 궁합이 잘 맞는 소스는 폰즈소스이다. 하지만 다른 생선회에 비해 감칠맛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담백하여 처음 맛보는 사람은 큰 기대에 실망하기도 하고 개인에 따라 질긴 식감으로 인한 호불호가 있다.
복어회는 얇게 썰어내는 것이 기술이다. 얼굴에 대면 비칠 정도이고 접시에 깔아 놓으면 접시 색깔이 오롯이 비치는 두께이다. 생복어 살은 단단하고 질기기 때문에 되도록 얇게 해야 좋은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조금만 두꺼워도 질겨서 회 맛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접시도 모양이 크고 색깔이 아름다워야 눈으로 먹는 2차 즐거움이 있어 그림이 멋진 수제품의 접시를 쓰며 복어회를 전문으로 하는 집은 접시 자체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금수복국 압구정점'
현지에서의 맛 그대로 서울에서 복국을 잘하는 ‘금수복국’이 있다.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복국은 맑은 국물, 콩나물과 미나리가 잘 조화되어 내어진다. 여러 종류의 복국이 다양하게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은복, 밀복, 까치복, 참복... 콩나물은 굵지 않아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이 탁월하고 양념된 고추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새콤·달콤의 상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무도 한몫하여 국물이 이처럼 시원하고 특별한지 미소가 절로 띠어지고 나중에 밥을 말아먹으면 육수가 코팅되어 꼬들꼬들한 밥알이 입속에서 춤을 춘다. 찰진 속살과 껍질은 아껴먹어야 될 듯 깨끗하고 곱다. 대한민국 대표 복국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으며 들어서는 입구에 복어 어항이 있어 아쿠아리움에 온 듯 복어를 볼 수 있고, 노니는 복어가 귀엽다.
‘동신 해물촌’
복어회 맛을 즐기려면 인천 연안 부두 근처에 있는 ‘동신 해물촌’을 찾는다. 제철 자연산 회를 파는 꽤 오래된 횟집으로 모든 재료가 싱싱하고 실하여 수준급이며 허튼(?) 밑반찬과 의미(?) 없는 스끼다시가 없다. 특히 이즈음에 가면 복어회를 스끼다시로 주는데, 어찌 감히! 복어회가 전체요리로 먼저 나올 수가 있나... 얇게 썬 복어회를 멋진 큰 접시에 둥글게 펼쳐 놓고 가운데에는 데친 껍질과 잘 손질된 미나리가 놓여있다. 접시 문양이 훤히 보이는 회 한점에 미나리를 돌돌 날아 부드러운 폰즈 소스에 찍어 먹으면 쫀득한 식감에 날아갈 것 같은 환상이 느껴진다. 주인아주머니의 솜씨와 음식에 대한 철학이 돋보이며 집에서 인천까지 오고 가는 시간과 차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 자연산 광어, 생홍어와 제철 생선회가 한 접시에 나오는 데 썰어놓은 회가 간결하고 품위가 있으며 깨끗하다. 여름에는 민어도 곁들여주는 착한 식당이다. 그때그때 제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비법의 원천은 인천 어시장의 싱싱한 해산물과 주인장의 꼼꼼한 정성에 있다. 메뉴는 따로 없고 주인장이 주는 대로 먹는, 요즈음 표현으로 ‘이모카세’라 할 수 있다. 스끼다시로 전복, 해삼, 간장게장과 계절에 따라 홍어애, 주꾸미, 병어, 소라... 모두 큼직하고 먹음직스럽게 손질한다. 가성비의 끝판왕이다.
늦은 봄, 초여름 황복의 맛 추억을 되살리기는 어렵지만 이때쯤 한번은 생각나게 하는 시원한 복국으로 원기회복하고, 과거 아이들이 귀국하면 인천공항에서 바로 연안 부두로 가서 고국의 싱싱한 맛을 느끼도록 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신 해물촌’으로 안양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복회를 맞이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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