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최초 대법관 탄생하나… 美 법조계 ‘마이클 박 시대’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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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aw.princeton.edu
미 연방항소법원 제2순회법원에서 2,500만 명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정작 맨해튼 거리에서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판사. 그러나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그를 두고 “차기 연방대법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가가 쏟아진다. 한인 2세, 마이클 박(49) 판사의 이야기다.
프린스턴대 동문지 PAW(Princeton Alumni Weekly)는 최근 박 판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정치적 스펙트럼을 초월해 많은 이들이 박 판사의 대법관 발탁 가능성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군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고, 미국 대법관 새뮤얼 알리토는 “마이클 박은 대법관으로서 손색없는 인물”이라며 두 차례나 그를 서기로 채용했던 인연을 강조했다.
박 판사의 여정은 한국 충남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박옥춘 씨는 가난 속에서도 배움만이 살길이라 믿고, 결혼 10일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4년, 그가 미네소타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기 전, 결혼식 날의 옥춘·영순 박 부부.사진 제공: 마이클 박 ’98
이후 미네소타주 로즈빌에서 박 판사가 태어났고, 가족은 버지니아로 이주해 교육·연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부모의 ‘타이거식 교육’ 아래 성장한 박 판사는 전국 최상위권 과학고인 토머스 제퍼슨 고교를 졸업한 뒤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거쳤다.
학창 시절 그는 철저한 보수적 가치관과 신앙을 바탕으로 학생 기독교 단체 활동에 몰두했다. ‘가장 어려운 것’을 기꺼이 선택하는 성격도 두드러졌다. 한 친구는 “공대생이 될 생각도 없으면서 생전 안 해본 공대 과목들을 고의로 골라 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스스로를 “머리가 가슴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마이클 박 ’98(당시 예일대 로스쿨 재학생)이 예일 파티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 흉내를 내고 있다.사진 제공: 마이클 박 ’98
예일대 동료들이 칠판 가득 필기를 남길 때 그는 단 두 줄의 핵심만 적어내는 학생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동료의 묘사는 그가 수십만 건의 판례 중 본질만 골라내는 현재의 재판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두 차례의 알리토 대법관 서기 경력은 박 판사의 법조 경력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알리토는 “처음부터 아주 뛰어난 인재임을 알았다”며 “그와 논쟁을 벌이는 시간 자체가 행복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한쪽 방향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그는 뉴욕에서 만난 진보 성향의 법학자 사라 서오(Seo)와 조용히 사랑을 이어가 2008년 결혼했다. 서오는 뉴욕대 로스쿨 교수로 형사사법 개혁을 연구하며, 스스로를 “신앙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길을 찾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서오는 “남편과 나는 많은 정책적 의견 차이가 있지만, 서로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대형 로펌과 법무부 법률자문실을 거쳐 2015년 보수 성향의 소송 전문 로펌에서 파트너로 활약하며 공적 관심사가 큰 소송에 참여했다. 특히 하버드대의 ‘인종 고려 입학정책’을 소송으로 문제 삼아 결국 2023년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소수인종 우대정책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주축으로 기록된다.
2018년 백악관으로부터 돌연 걸려온 전화는 그의 삶을 다시 바꾸었다. 뉴욕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끝내 ‘블루 슬립’을 거부했고, 상원 청문회에서도 “정치적 의제를 법정에 들여올 사람”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공화당 주도 상원은 그를 52대 41로 임명했다. 당시 43세, 최연소 연방항소판사 중 한 명이었다.
초기에는 “사법부 생활은 수도승 같다”며 실무 변호사 시절의 역동성을 그리워했지만, 판결문으로 국가 정책을 흔들 수 있다는 책임감을 깨달은 후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명료함”이라며 매 사건마다 최대한 간명한 판단을 내리려 한다.
그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밝힌 판례는 2020년 코로나19 당시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종교시설 인원제한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다.
대법원은 결국 박 판사의 견해에 동조했다. “정치가 양극화되며 사법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마지막까지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현 미국 정치환경을 날카롭게 겨냥한다.

2008년부터 박 씨와 결혼한 사라 서 ’02 *16은 20세기 미국 형사사법의 법사학자이며, 최근 컬럼비아대를 떠나 NYU 로스쿨 교수로 합류했다. 사진: 스티븐 보스(Stephen Voss)
법조계에서는 그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본다. 민주당 인사인 안잔 사니는 “그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을 오히려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오바마와 클린턴 정부가 임명했던 제2순회항소법원 데니 친 판사는 “그가 대법원에 오른다면, 아시아계 법조 역사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프린스턴대에서 12명의 동문이 대법관을 배출했다. 그 중 사무엘 알리토,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등 최근 15년 사이 세 명이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명의 프린스턴 출신이 미국 사법의 정점에 오를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마이클 박 판사가 말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겸손한 답변과 달리, 워싱턴과 법조계는 더욱 확신에 차 있다. 그의 현재 위치는 ‘조용한 법률가’이지만, 미국 최고법원의 문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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