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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민경숙교육컬럼]느림은 여유로움 속에서 새 가치 창조 민경숙의 교육칼럼 <6>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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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서 좋았던 것들이 있었을까?’

'아장아장 아기의 걸음걸이,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 달팽이의 질주, 찻잔의 향기와 온기, 어머니의 자장가, 토요일 오후의 햇살, 바닷가 모래 놀이...' 

필자가 존경하는 한 지인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발달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바로 그 수준에서 멈추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디지털의 속도감을 즐기면서도 아날로그의 낭만이 아직은 공존할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나마 인간적인 삶의 여지가 있었다고. 

모든 것이 빨라지고 바빠졌다. 내가 선 대열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보고 달려가고 있다. 이러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법도 하다. 오늘 하루는 느림이 갖는 아름다움을 새겨보면서 느려진/늘어진 삶을 예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느림은 나태함이 아니라 여유로움을 생성하는 원천이다. 한 박자 여유 있는 쉼을 만끽하려면 우리는 느려짐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얼마전 자동차를 운전하여 제법 붐비는 사거리를 지나는데, 돌연 거위 한 가족이 느릿느릿 무단 횡단을 시도하고 있었다. 한창 속력을 내어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운전자들에겐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 그 대열에 합류해서 제한속도를 놓치지 않으려는데 난데없는 거위 가족의 출현은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은 그리고 모든 차들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출몰이 싫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의 무사 행렬이 작렬하게 끝이 날때까지 운전자들 중 누구 한 사람 그 느린 몸짓에 대고 경적을 울리대기는커녕 뒤뚱이는 거위들의 자태에 웃음을 던지고 오히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바쁜 걸음에 여유로운 쉼표를 크게 찍어 주었던 거위들의 목숨 건 용기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들의 느린 발걸음이 종일 되새김질 되었다.     

어디 여유뿐만이랴. 느림의 시간은 또한 세밀한 공을 들여 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지막 한 조각, 마지막 한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마무리해 본 사람이라면 그 마지막 느림이 얼마나 대단한 집중과 미세함을 요구하는지 경험했을 것이다. 기계적 시간(chronos, 크로노스)에 의존하지 않는 초시간적 선택(Kairos 카이로스)은 대부분 느린 손놀림을 통해서 온전히 행해진다.

이들과 블록 쌓기 놀이를 할라치면 마지막 블록 하나를 맨 꼭대기에 올려 놓기 위해서 아이들은 엄청나게 미세한 손 놀림으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든다. 가장 좋은 한 순간을 찾기위해서, 바로 그 때(the right time)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숨을 죽인다.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에게도 곡의 말미에는 리타르단도(ritardando, 점점 느리게)를 두어 대미를 장식한다. 글을 쓰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확함을 성취하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극히 세밀한 떨림과의 싸움을 시간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미세한 벽 앞에서 혹은 마지막 마무리 앞에서 느릿느릿 찾아오는 작은 퍼즐 조각들을 꼭꼭 챙겨 넣어야만 멋지게 완성된 작품을 얻을 수 있다. 

느림은 한편 기다림을 가르친다. 행복으로 난 또 다른 길이다. 현대 사회는 인류에게 빨라서 행복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가파르게 구조화된 놀이 기구의 가속도, 지하철과 산 속에서도 빛의 속도로 전송되는 데이터. 하룻밤 사이에 지구의 반대편으로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운송 수단 모두 빠름으로 기인한 행복이다. 느려터진 것들에 속이 터진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과제 (time-based task)들에 익숙하지만 이것들을 빨리 해내기 위해 겪는 고통도 만만찮다. 몇 분 내에 완성해야 하고, 오늘 밤까지 가야하고, 한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초침을 들이대며 더 빨리 기록을 깨는 자에게 선두 자리를 주겠다 을러 대면 편치 못한 마음에 병이 날 것이다.

명 적당한 시간적 압박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간과의 싸움은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고 자성하게 하는 고마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촘촘하고 매몰찬 시간의 협박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중, 고등 학교 시절,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들은 내게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시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시간이라는 잣대가 심리적인 불안을 초래하고 급기야는 두뇌의 원활한 회전을 차단시켰다. 수 십 년이 흐른 지금도 시간 내에 풀지 못한 답지를 들고 떨고 있는 꿈을 꾸곤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었더라면, 나는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꿈이었지만 나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느린 아이들이 있다. 성질 급한 부모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이 되고, 학교 교육의 속도에 숨이 가뿐 이 아이들은 마치 달리는 차의 헤드라이트 속에 뛰어들어 깜짝 놀란 사슴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이 여유롭게 삶을 즐기고, 성찰하는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즐기며 섬세하게, 마지막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고뇌하면서, 바로 “그 때” 바로 그 “한 순간”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 숨을 죽이며 기다리는 미학을 어른이 된 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고 교육은 빨리가기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생이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아이들을 너무 다그치지 말자. 월반을 칭송하지 말자. 선행학습을 성공의 열쇠로 여기지 말자.  한 박자 쉬어 가자고 말하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서행구간이라고 말하자. 너무나도 빨라진 삶의 템포 그리고 교육의 속도를 이제는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은가!

 

 

글 싣는 순서
1    사이버 공간과 교육
2    균형 잡힌 부모
3    재능과 장애의 연속선 상에서
4    자녀를 존중하는 대화 I
5    자녀를 존중하는 대화 II
6    느림의 미학
7    현명한 소비
8    비평적인 읽기와 쓰기I
9    비평적인 읽기와 쓰기II
10    내 속에 있는 고정관념-똑바로 신드롬
11    교수-학습 사례 I -데이드림
12    교수-학습 사례 II -학습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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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숙 

·교육학 박사(토론토)
·교육컨설턴트
·한국 교원대·토론토대 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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