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민동필박사의 교육칼럼] 감정으로 가르치는 교육은 아이의 두뇌를 퇴화 시킨다!
페이지 정보
본문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육 과정에서 감정으로 가르치는 경우는 너무도 흔했다. 잘잘못을 따지며 잘했으면 상을 주고, 잘못했으면 벌을 내리는 등의 교육, 당시에는 너무도 싫고 화가 날 정도였다. 물론 힘없는 학생의 입장에서야 그저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참고 넘어갔을 뿐이지 돌아서면 선생님에 대한 욕을 할 정도였으니 쌓였던 감정은 엄청났다. 그런데 이런 교육 방법이 많은 아이들의 두뇌가 퇴화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아마 지금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이제부터 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먼저 감정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이러한 가르침의 방법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다.
감정으로 가르치는 것은 말 그대로 ‘해/하지 마’, ‘맞았어/틀렸어’, ‘잘했어/잘못했어’와 같이 단정적으로 가르치는 경우다. 특히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화난 표정과 함께 ‘틀렸어!’ 또는 ‘하지 마!’와 같이 표현한다면 이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아이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는 방법은 왜 생겼을까? 그 근원은 생존본능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가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은 감정 표현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소통 방법은 인간 이외의 두뇌를 가진 그리고 새끼를 키우는 동물도 가능한 소통 방법이다. 개나 고양이도 새끼들을 가르칠 때 감정을 표현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의 경우 신호를 사용해서 의사 전달을 하지만 신호가 너무도 단순하기 때문에 감정이 동반되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기 어렵다. 따라서 동물들의 경우 감정으로 소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왜 언어가 발달한 인간이 감정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감정으로 가르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적 표현에는 굳이 길고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또 진화의 과정에서 본능에 각인이 된 방법이다 보니 사용하는 것도 쉽고 자연스럽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서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는 것과 같다. 생명체가 수 억 년을 거듭해 진화하는 동안 감정을 통한 의사소통과 감정으로 가르치는 방법은 몸에 배인 운전 습관처럼 본능에 각인이 되어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나아가 감정을 통한 의사 전달은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나 노래하는 가수가 ‘감정의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이라는 것이 가장 단순하면서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적은 것처럼, 이러한 방법을 통한 의사소통은 감정으로 표현해서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아이가 말을 듣도록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 가르치는 사람의 두뇌는 그나마 감정 표현이라는 영역에서는 발달할 수 있다. 문제는 감정으로 쏟아내는 부모나 어른 또는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있다.
감정으로 가르치는 과정에는 말이 별로 필요 없다. 또 ‘공부 해!’, ‘게임 그만 해!’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이유도 별로 필요 없다. 아이들이 ‘공부를 왜 해?’라고 물으면 ‘훌륭한 사람 되어야 하니까!’라고 말하면 된다. 아이들이 또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공부가 왜 필요해?’라고 물으면 ‘그걸 말이라고 하니?’라고 되물으면서 나무라면 된다. 만일 부모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면서 아이를 가르칠 방법을 생각한다면 두뇌가 조금은 발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는 반대다. 우선 원하는 답도 얻지 못했다. ‘비가 왜 와?’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답이라도 얻으면 그나마 지적 욕구가 채워져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공부를 왜 해?’라는 질문에 답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지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나면 내 답답함을 풀어야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대상이 많지 않다. 동생이 있으면 동생에게 화풀이 하거나 물건이 있으면 물건에 화풀이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화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화가 나도록 만든 뿌리는 부모에게 있는데 다른 곳에 화를 풀어봐야 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정이 쌓이면 두뇌는 생각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저 감정에 매달려 매순간을 살아 넘기기 바쁠 뿐이다.
생각은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답이 없으면 답을 찾는 과정이 생각이다. 그런데 감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아이들의 두뇌는 감정이라는 틀에 갇혀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을 잊기 시작하면 두뇌는 결국 퇴화한다. 그런데 이런 두뇌의 퇴화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드라마, 영화, 노래 등과 같이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에 빠져 열광하면서, 연기자나 가수들을 숭배하다시피 하는 경우다. 가수의 공연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두뇌는 생각의 길로 접어들 수 있지만 그저 좋아서 열광한다면 그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선에서 그치기 때문에 두뇌는 더욱 더 퇴화하게 된다. 그리고 퇴화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설 자리는 인간의 사회에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는 감정으로 가르치는 것은 언어가 발달하지 못한 동물들의 교육으로 남겨두고, 인과의 법칙과 새로운 것을 탐구할 수 있는 두뇌능력을 개발하는 가르침으로 바꿔야 할 때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방법은 PonderEd Education (http://kr.PonderEd.ca)에서 얻을 수 있다.
----------------------------------------------------------------------------
민동필 박사
· PonderEd Education 대표
· Infonomics society 자문위원
· World Congress on Special
Needs Education 학회장
- 자세한 공부 방법은 필자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kr.PonderEd.ca.
- 이전글[SK이민컬럼] 2023년 연방 Express Entry 초청 결과 분석: 누가 초청 가능성이 높은가?-3부 24.02.02
- 다음글[서동임의 뮤직라이프] 잘츠부르크 모짜르트 박물관 24.04.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