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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민동필박사의 교육칼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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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억 속에 노래 하나가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로 시작하는 노래다.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노래로 만든 것인데 요즘은 이 노래가 많은 젊은이들이 꿈꾸는 실제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디를 가든 춤추며 노래하고 또 아이돌이 되기를 희망하는 모습이 방송에서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방송이나 연예인들이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인기를 모으는 방법이자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빠지기를 바란다지만 개개인은 왜 이런 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모습과 공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과거에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부모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연예인이 어린 아이들이 원하는 직업의 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또 부모들도 이러한 직업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 같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방송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방송에서 아무리 춤추고 노래하는 프로를 다룬다고 해도 연예인에 대한 선망의 정도가 이렇게까지 깊을 수 있을까? 무엇이 아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춤과 노래에 열광하고 연예인에게 환호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원인은 교육과 사회에 있다. 우선 사회는 학생들로부터 선택의 여지를 별로 남겨놓지 않았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부분에서 ‘무슨 소리야?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의 장도 많이 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활동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가상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체험의 장은 체험을 위한 것이지 실제 자연이 아니다. 자녀들과 함께 이러한 장소에서 체험을 한다고 해서 자연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은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현장이다. 그런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에는 이러한 생존경쟁의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온실속의 식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떨까?


교육은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의 어떤 미래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인간의 두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삶인지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교육의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답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새로운 문명, 과학기술, 또는 개념을 세상에 내어놓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혼자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갈릴레오가 이런 주장으로 인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목숨까지 위협을 받았던 역사속의 기록은 새로운 것이 환영받지 못했음을 반증해 준다. 또 세계 2차 대전 때 원자폭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내게 없는 새로운 기술은 곧 위협이자 제거의 대상이었다. 반면 가르쳐주는 기술을 착실하게 배우고 익히는 교육은 장려되어왔다. 왜일까?


바둑계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면 바둑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수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곧, 바둑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사람들의 수는 쉽게 그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기득권자가 충분히 대비할 수 있고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은 싹부터 자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권력층은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착실하게 배워서 써먹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왜 춤과 노래 또는 운동경기와 같은 분야에서의 창작은 오히려 찬사를 받고 사람들이 환영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면서 환대를 해 주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춤과 노래, 운동경기는 권력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사람들을 울고 울리며 인기를 끌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바로 두뇌능력에서 온다. 동물들이 사냥을 할 때 목표물의 움직임에 따라 사냥방법을 달리한다. 춤과 노래 그리고 운동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정해져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법을 찾기 때문에 시작부터 우물 안에 갇힌 상태다. 그러니 멀리 갈 수도 없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핵심요소인데 노래와 춤에서는 호기심이 빠져있다. 호기심은 ‘왜’로 시작하는 질문인데 노래나 춤에는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기면 그만인데 권력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기껏 해야 소심한 반항일 뿐이다.


노래와 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점차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존속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경쟁을 위한 두뇌능력을 키워야 가능한데 노래와 춤에 열광하는 사이 두뇌는 동물의 수준에 갇히게 되기 때문에 두뇌를 바탕으로 한 경쟁력을 잃는다. 물론 춤과 노래로 돈은 벌 수 있겠지만 말이다. 두뇌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재력은 한순간 무너질 모래성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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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

· PonderEd Education 대표 

· Infonomics society 자문위원

· World Congress on Special 

    Needs Education 학회장

· 밴쿠버 늘푸른 장년회 교육담당 이사

- 자세한 공부 방법은 필자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kr.PonderEd.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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