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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수묵화를 닮은 새 - 한희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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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수년 전 열하루 동안 혼자 DMZ를 걸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걷다가 경치가 너무 좋아 걸음을 멈춘 곳이 몇 곳 있었는데, 그중의 한 곳이 철원이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강과 절벽을 바라보던 자리 바로 옆에는 펜션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다시 몇 년이 지나 철원에서 말씀을 나누느라 며칠을 머물게 되었는데, 저를 위해 마련한 숙소가 바로 그 펜션이었습니다. 왜 숙소가 낯익을까 싶어 살펴보니 맞았습니다. DMZ를 걷다 걸음을 멈추었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두루미 전문가를 만난 것은 그런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숙소 안에 있는 찻집 벽에는 두루미를 찍은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었는데, 사진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의 기술보다는 열정이 없으면 찍을 수가 없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달빛이 괴괴한 새벽녘 두루미가 모여 잠든 곳 앞으로 멧돼지 몇 마리가 지나가는 사진은 쉽게 조우하기 힘든 순간이었겠다 싶었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두루미가 내뱉는 뜨거운 숨이 막 퍼지기 시작하는 아침 첫 햇살 속으로 번지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두루미가 사랑을 나누는 은밀한 순간은 어떻게 포착을 했을까 싶었고요.

몇 번의 약속 끝에 마침내 사진을 찍은 분을 만났습니다.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서였는지, 그는 두루미가 찾는 철원에서 태어나 팔순을 내다보는 지금까지 철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두루미를 사진에 담아온 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두루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날아갔습니다. 비행기 값이 30만 원이면 필름값이 30만 원 드는 시절이었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들인 장비도 만만치가 않아 아파트 몇 채 값을 족히 날렸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전해주는 이야기와 사이사이 가벼운 웃음은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두루미가 자기 짝과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도, 밤에는 모두 한곳에 모여 잠을 자지만 낮에는 식구끼리 먹이활동을 한다는 것도, 흰색 몸통을 가진 새가 어미고 잿빛을 띄는 것이 새끼라는 것도, 낮에 함께 있는 잿빛 두루미 두 마리는 신혼부부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두루미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분이 찍은 사진을 보고서는 두루미 찍기를 포기한 경우도 여럿이라고 했습니다. 눈앞의 사진을 보고 나니 도무지 그런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두루미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루미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은 드물고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바라보는 두루미는 단아했고 고고했고 기품이 넘쳤습니다. 눈 내린 들판, 검붉은 눈과 긴 다리와 긴 목과 긴 부리로 서 있는 모습이 뭔가 외로워도 보이고 외로움을 벗어버린 듯도 보였습니다. 두루미에 빠져 날릴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수묵화를 닮은 새를 가만히 좋아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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