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의영화이야기] 폭주하는 신세기 >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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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 저기 사막을 보라. 작열하는 태양 아래 뒤로 접힌 다리를 끌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를 보라. 온몸을 덮은 사슴같은 갈색 털에 찰랑이는 금발, 왼팔에는 손 대신 뱀을 달고 유두 여섯 달린 웃통을 시원하게 드러낸 채 존재의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 이름은 방랑하는 천사 자비에르다.

 

탈주천사 자비에르 (Xavier : Renegade Angel) 는 미국의 심야 성인용 애니메이션 채널 어덜트 스윔에서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방영한 애니메이션이다. 

2000년대 유행한 거치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2와 엑스박스 게임을 연상시키는 3D 그래픽으로 제작된 이 시리즈는 성인 지향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지원하던 어덜트 스윔의 자유 분방하다 못해 고삐 풀린 정신을 잘 대변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휘갈긴 낙서에서 탄생한듯한 자비에르는 외모만큼이나 기묘한 캐릭터다. 폭주하는 나르시시즘이 자의식 과잉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쉴새없이 입을 놀리며 오디오를 가득 채운다. 

항상 삶의 의미와 자신의 가치를 찾겠다며 세상을 방랑하지만 결국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상황은 자신의 깊은 심상과 지성을 돋보이게 할 수단으로 귀결된다. 

제딴엔 멋있겠지 하며 하는 행동들이지만 타인에게는 웃기게 생긴 떠벌이가 제 자랑만 늘어놓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자비에르의 모험은 항상 생각의 흐름대로 진행된다. 시즌 1 1화의 전개는 자비에르를 괴롭히던 양아치들이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컴퓨터를 처분하기 위해 강에 던지자 강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 때문에 땅에 스며든 컴퓨터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되어 구시대적 그래픽으로 돌아가 버리며 이 참사를 되돌리기 위해 자비에르는 개 척추를 뽑아서 피리를 만들어 불어야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줄거리가 매 회 반복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의 연속을 통해 자비에르는 사회 속 문제점을 꼬집는다. 저질 철학을 늘어놓는 자비에르는 마치 지적 허영에 취해 타인에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현대인들을 풍자한 듯한 모습이다. 빈부격차, 종교, 폭력, 질병, 살인, 성폭행 등등 그가 매 에피소드 마주치는 사회적 문제들은 절대 잘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되거나 새로운 참사를 불러 일으키기 까지 한다. 성별 갈등, 사회계층 사이의 차별, 인종 문제 등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자칭 운동가들이 시끄러운 목소리만을 앞세워 사태를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법칙과 미적 기준 그리고 사회적 통념에 거스르는 자비에르는 오만하고 정신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떠벌이의 행각을 상상할수 있는 가장 추한 방법으로 여과없이 보여주는 충격요법을 통해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