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의영화이야기] 6피트 아래에서 >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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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물자 운송을 하며 살아가는 트럭 운전사 폴, 운 나쁘게도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뒤 지하에 묻힌 관 안에서 의식을 차리며 영화가 시작된다.

파격적으로 실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중 하나인 ‘베리드’의 무대는 성인 남성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관 속이다. 직접 등장하는 배우 역시 관 속에 갇힌 주인공을 연기하는 라이언 레이놀즈 한 명 뿐, 나머지는 손으로 꼽을만한 적은 인원이 목소리로만 등장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간신히 라이터를 찾은 폴은 주위를 밝혀 도움이 될 것들을 찾는다. 간신히 주인 없는 휴대폰을 찾은 그는 119, 국방부, 친구, 가족, 회사 등 생각이나는 대로 전화를 한다. 

‘A vs the world’ 라는 서구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 있다. 팔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좁은 관 속에 갇힌 폴 역시 빠져 나가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 회사는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기는 커녕 보험금과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계약 사기를 통해 꼬리를 자르고, 답답한 관료주의가 낳은 무능한 공무원들은 자국민의 안위를 위하기는 커녕 매뉴얼대로만 따르며 비상사태 앞에서 현실 감각 없는 모습을 보인다. 

다행히 국방부의 협상과 인질구출 담당과 연락이 닿아 구출작전이 시작되지만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구출에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를 파묻은 테러범은 어처구니 없는 액수의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하지만 평범한 가장인 폴에게 그만한 돈은 없고 정부는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다’ 는 말을 내세운다. 

 

이 모든 것과 씨름하는 와중에도 고갈되어 가는 산소와 핸드폰의 배터리, 그리고 땅의 어둠을 두른 폐소공포증이 폴의 목을 죄어온다. 단순히 실험적인 전제만을 내세울 뿐만 아니라 흡인력 있는 연출을 통해 영화는 한정된 배경과 인물이라는 약점을 타개한다. 한정된 광원과 어둠을 이용하여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연출과 상황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카메라 앵글은 눈이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또한 독사의 출현이나 돌발적으로 무너지는 관의 상태는 무대를 더욱 좁히고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늘려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시민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공포영화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본능에 내재된 고립과 죽음에 대한 공포 뿐만이 아니다. 진짜 위험이 닥쳤을 때 공권력과 정부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우리를 무시하거나 더 큰 위험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정말 무능한 공무원의 실수와 나태가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생각하는 우리지만 정말 극단의 상황이 닥치게 되면 침착할 수 있을까? 경찰과 정부를 믿고 생명을 맏길 수 있을까? 독창적인 세팅과 맞물리는 의문을 던지며 베리드는 관객에게 90분 동안 끝나지 않는 스릴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