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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중략/심순덕 시,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에서)

 

언젠가 우연히 만난 시 한 구절이다.

지난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으로 울며 읊조렸던 시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가을이 깊어가나 보다. 다시 온 가을을 찾아 불효 자식은 설악산, 신안 자은도, 영축산 등 여기저기 쏘다녔는데, 위 시를 떠올리다 보니 구순이 넘은 고향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가을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다워도 걷기 힘드니까 그냥 방 안에서 TV를 봐도.

아... 그랬구나. 고향에 올 때 가끔씩 모시고 나들이를 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마음 기저에는 어딜 가도 걷기 힘드니 그냥 집에 계시는 게 나을 거라는 내 맘대로의 착각이 떡 버티고 있었다.

100년 가까운, 지난한 삶의 곡절을 겪으며 살다 보니 그런 작은 호사라도 누릴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그림의 떡이 되었을 뿐인데.이 불효 자식은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있었으니 이토록 막심한 불효를 어찌하랴.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머니와 다른 소통을 하기로 했다. 뭐든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쭤보고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 드시러 갈까요?  어디 바람 쐬러 갈까요?’ 등등.

엊그제 마침 미국에 사는 이종사촌 동생 부부가 와서 고향의 어머니를 뵈러 간다기에 그 1탄으로 ‘단풍 보러 가자고’해서 순창 강천산으로 향했다. 마침 산 입구는 가을 단풍이 제법이다. 

어머니의 좋아하시는 표정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나이가 들어도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을 새삼 다시 확인한다. 혹여 자식들에게 누가 되거나 힘들게 할까 봐 ‘괜찮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뿐이리라. 마음이 짠해지면서 내 스스로 잘 했다고 토닥거린다. 앞으로 할 수만 있다면 아니 기꺼이 시간을 내서 어머니와 함께 할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 

순간 어머니의 계절을 생각해 본다. 희로애락의 비빔밥 같은 인생의 春夏秋冬 중 어디에 계실까를 헤아려본다. 인생의 봄날을 맛이라고 보셨을까. 아마도 봄날보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같은 삶을 주로 살아오셨을 거라 어렴풋이 되뇌인다. 나이로도 이미 겨울, 하지만 오늘만은 어머니는 아름다운 가을속에 있다.

가을속의 어머니의 삶의 빛깔은 어떠할까. 순백의 무명에 땀이 밸 대로 밴 얼룩진 그것일까? 아니면 삶의 온갖 것들이 그대로 녹아든 무지개빛일까? 

아니 그 어떤 삶의 흔적들도 바람처럼 다 지나가버려 텅 빈 투명한 호수 빛깔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도 봄꽃, 가을 단풍을 보고 싶다는 것!

아주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행스러운 삶의 진한 깨달음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鋪道 위에 뒹군다. 깊고 깊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가을이 깊어간다.

어머니의 새로운 가을이다. 아흔한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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