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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진정한 예술가는 시간 위에 그림을 그린다 - 한희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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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아니면 하루 한 번 정릉천을 산책합니다. 대개는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섭니다. 겨울 해는 짧아 저녁을 먹고 나면 캄캄한 어둠,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에 기온이 더 떨어지지만 밤길을 걷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멋과 정취가 있습니다. 두꺼운 옷에 모자까지 잔뜩 채비를 한 채 길을 나섭니다.

올겨울은 눈이 흔했고, 정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눈은 꽁꽁 얼어붙은 정릉천 위로도 쌓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눈과 물과 얼음은 한 형제입니다. 무슨 맘인지 물은 눈을 금방 잊고 말지만, 얼음은 오래도록 간직합니다.

흰 도화지 앞에 서면 마음 설레는 것이 어디 아이뿐일까요, 나이가 든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음장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고, 마음은 금방 어릴 적 시간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정릉천을 걷다 말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정릉천은 북한산 자락답게 유난히 돌과 바위가 많은데,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에 마치 논에 물을 가둬둔 것처럼 제법 넓고 평평하고 고른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곳 얼음 위에 쌓인 눈 도화지에 누가 언제 그린 것인지 참으로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큰 나무 세 그루와 그네를 타는 아이, 세상 어디라도 날아갈 것 같은 커다란 잠자리와 나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상상력에 한계가 있겠냐는 듯 토끼와 거북과 돌고래가 함께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필시 발로 그렸지 싶은 그림들, 그런데도 눈 위의 그림들은 선명했고, 생생했고,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어딘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순간과 대상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 시간과 공간을 단숨에 뛰어넘어 나무와 그네와 아이, 잠자리와 나비와 토끼와 거북과 돌고래를 한자리에 초대를 합니다.

입춘을 앞둔 며칠 전이었습니다. 낮의 기온이 따뜻했던지라 그림이 궁금했습니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에 이르러 저절로 걸음을 멈췄습니다. 역시, 눈 위의 그림들은 모두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위에서부터 스민 물이 장난을 치듯 그 멋진 그림들을 모두 지우고 말았습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모두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구나 싶었습니다.

그림들은 봄눈 녹듯 사라졌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그네를 타는 나무는 물결 잔잔한 날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고, 잠자리와 나비는 저만의 날갯짓으로 찾아와 욕심 없이 목을 축일 것이고, 산토끼도 어둠을 틈 타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 것이고, 거북과 돌고래도 바닷속 민물 이야기를 듣고는 물의 시원 정릉천을 떠올리겠지요.

진정한 예술가는 시간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씁니다. 그러기에 시간이 지나가도 남아 있습니다. 그림이 그려졌던 정릉천을 지날 때면, 사라진 그림들이 다시 살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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