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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수필] 엄마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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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수필] 휴스턴 문학동호회

엄마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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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형은 견원지간( 犬猿之間)이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라고 엄마가 형을 괴롭혔고, 장가간 후에는 형이 사사건건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한 답시고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되었다. 화가 날 때면 엄마는 “나는 너 안 낳았다!” 혹은 “도로 뱃속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둘은 말도 빠르고 목청도 컸으며 고집이 강한 점에서 모자지간(母子之間)이 확실했다.

엄마는 가게를 운영하며 자식 둘을 건사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고, 형은 어릴 때부터 뭐든 금방 배워서 공부도 곧 잘 했었다. 잘난(?) 두 사람 틈에서 나는 등 터진 새우로 십여 년을 지내면서 두 사람을 지켜보게 되었다.

나름의 개선방안이 떠오를 때마다 의견을 피력했지만 당연히 묵살당했다. 실제로 형은 나를 "비상식량(위급 시에 식용으로 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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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랜 세월은 무시당하며 억울함 속에 자아성찰을 하며 지냈어야 했는데 역설적으로 이 기간 동안 나의 멘탈은 굉장히 단단해졌다.(=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위로해본다.) 


늘 자기 멋대로 하던 형이 명문대 입학에 실패하고, 조용히 칼을 갈던 나는 유명 미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드디어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육장을 벗어난 돼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대입과 함께 집과 멀리 떨어지면서 혼자 살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형은 주말에는 종종 집에 들렀다. 당연히 엄마와 형의 견원지간도 계속 이어졌다. 이때만 해도 나는 문제점은 인지했지만 해결방법은 몰랐었다.


입영통지서와 함께 엄마는 드디어 자유(?)를 맞이하나 싶었지만 근시가 심해 4급 판정을 받은 형은 공익근무요원으로 4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과 휴학을 연달아 시전한 형은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며 잠시 엄마에게서 멀어지나 싶더니 갑자기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부모님도 반대했고  외삼촌으로부터 철없는 놈으로 낙인찍혔다. 결혼한 뒤에 형은 형수와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견원지간의 종지부를 찍는 듯했지만, 4년 뒤 형이 돌아오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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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정체되었던 것일 뿐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즈음 나는 4년 차 사회인으로 꽤 오랫동안 학생이었던 형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으로 승진해 있었는데, 형은 처음에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했던 거 같다.


드디어 나는 형에게 이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개가 마실 나간 사이 돼지는 날개를 달았다고나 할까?

"행님아, 우리가 일 년에 몇 번 집에 내려가?"

"명절 때나 내려가지."


우리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형제였다. 차로 4-5시간을 달려야 하고 명절에는 9시간까지도 걸리는 먼곳에서부터 왔다.

"그럼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그마저도 바쁘면 못 내려갈 수도 있지?"

 "그렇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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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유학과 결혼 생활을 병행하며 앞가림하기 바쁜 시기에 사실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난 상태였다. 아버지가 큰 이윤이 남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전문 사기단의 계획된 함정에 빠져 산이며 건물이며 몽땅 빚 갚는데 쓰고 나 역시 적금 깨기 와 대출받기 '더블 콤보'를 시전한 뒤 대출 상환이라는 종지부 끝에 거지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부모님 간의 결속력(?)은 높아졌지만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반죽음 상태였다.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살거 같아? 십 년.. 이십 년?"

 "엄마 건강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지.. 그래도 한 이십 년은 더 사시지 않겠나?"

 "행님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너무 최대치로 계산하지 말자." 

 "......"

 "일 년에 한두 번, 그리고 10년~20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면, 앞으로 엄마를 볼 수 있는 건 남은 생에 스무 번쯤 일지도 몰라."

형은 잠시 말을 잃었다. 

"평생 엄마랑 다투기만 하다가 남은 시간 홀랑 보내버릴 거야?"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형은 한참 지나고서야 "그렇게는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고작 이런 대화 몇 마디가 엄마와 형의 관계에 대단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아무도 듣는이 없던 공허한 외침과도 같았던 내 목소리가 이제서야 형의 귓가에도 닿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모자지간이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분명 길은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문득 엄마의 인생은 어땠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형과 나눈 대화는 내가 엄마의 삶, 나아가 중년 여성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글쓴이=사람꾼('주업은 주부, 취미는 사색!'이라고 소개함)  휴스턴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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