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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푸드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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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 올해는 유례없는 폭염과 태풍으로 더욱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며칠 전 처서도 지나고 더위도 한풀 꺾이니 산란했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때 불현듯 생각나는 곳이 신안 증도이다. 

오래전 직장 일로 [자은-지도] 구간 지방 도로를 설계하면서 방문했던 곳으로 신안은 많은 섬들의 아름다운 풍광과 평화로운 느낌이 꽤 인상적이었다.


증도는 맑은 공기, 파란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 갯벌 염전이 시간이 멈춘 듯 자연과 일체가 되는 섬으로 슬로 시티로 지정되어 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고민하던 터에 식당 주인장이 저녁에 근사한 음식이 있으니 꼭 오라고 신신당부한 말이 생각나 무심코 식당을 찾았더니 와우! ‘민어’가 있지 않은가? 어찌나 큰지 10Kg이 넘을 듯한 대 민어로 눈이 번쩍 뜨였다. 껍질 손질부터 회, 부레, 내장 등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새삼 흥미로웠다.


분홍색 빛이 감도는 회는 무지개가 보이는 듯 윤기가 흐르고, 거뭇거뭇한 껍질의 오들오들한 식감, 우윳빛 색깔의 부레는 쫀득쫀득하면서 고소한 맛이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으니 입안이 황홀하다. 

서울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민어 종합 세트이다. 식사와 같이 곁들이는 ‘민어탕’은 주인장의 오랜 손맛이 어우러져, 된장만 들어간 것 같은데 어찌나 맛있는지 입에서는 쩝쩝 소리가 저절로 난다. 

생선살을 투박하게 저며내어 계란을 입힌 ‘민어전’은 속에 육즙이 가득하여 다른 생선전과는 격을 달리한다. 아껴 먹느라 몇 조각 나누어 먹다가 한입 크게 먹으니 입안 가득 풍기는 향과 고소한 맛으로 입안이 난리가 난다.


주인 가족들이 먹으려던 내장 수육을 주었는데, 부드러운 애(간)와 쫄깃한 내장 등 이런 별천지 맛이 있나 싶다. 그 이후 서울에서 내장 수육은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은 회와 탕만 먹고 ‘민어 먹었다’라고 하지만, 증도에서는 내장 수육까지 먹어야 한 마리 먹은 셈 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름철의 ‘어중지왕’인 민어와 함께 호사스러운 저녁식사를 누렸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느림의 철학을 추구하는 그곳만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여름의 민어보다는 왠지 여름의 끝자락, 무엇인가 차분히 정리를 하려는 늦여름 민어가 나는 좋다. 이런 느낌으로 며칠 전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는데, 많이 변해있는 시장은 구경거리도 많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좌판에는 민어들이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듯 손님을 반기고 있다. 증도에서의 맛을 기대하며 대 민어를 먹을 만큼 한 토막 샀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횟감과 부침용을 따로 손질하여 담았다. 

부침용은 좀 두툼하게 저며야 살이 부서지지 않고 육즙을 담을 수 있어 맛이 좋다. 민어전은 노란 겉옷과 하얀 속살이 아름답고, 심심하게 부쳐야 민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며, 두툼한 전은 석 점만 먹어도 왠지 소임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민어는 워낙 커서 집에서 손질하기도 어렵고 양도 많아 한 마리를 사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수산시장에서 원하는 만큼 사서 집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 회, 전이 먹고 싶으면 몸통을, 탕이면 머리 부분을 사서 요리하면 된다. 나는 편안하고 차분하게 즐길 수 있고 가성비가 좋아 수산시장을 선호한다.


‘홍어랑 민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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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친구들과 큰맘 먹고 종로 낙원동에 가격이 착한 민어집인 ‘홍어랑 민어랑’을 찾았다. 비싼 생선이라 기분만 내는 회 한 접시이지만 학창 시절 즐거운 추억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니 기운이 절로 나는 것 같았다. 

맛난 음식을 하나씩 끄집어내 친한 벗들과 함께하니 즐거움이 더한다. 이 식당은 다른 곳보다 회를 조금 두껍게 손질하여 풍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념간장이나 참기름 소금장이 어울리며 기름기가 적어 회 맛이 담백하다. 과거 종로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민어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래전 잘 아는 지인이 목포에서 약 8kg 정도의 대 민어를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크기에 당황한 아내는 오랜 시간 민어와 씨름하면서 손질한 생각이 난다. 

어렵게 고생한 덕분에 신선도가 좋은 선어회, 살짝 익힌 부레와 껍질, 따뜻하고 부드러운 전, 구수한 내장 수육과 맑은 탕을 만들어 식탁 위의 연회가 한상 벌어졌다. 

10명이 먹어도 남을 양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모든 부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행복했었다. 특히 민어 애(간)는 수육의 화룡점정으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은 밀크 아이스크림처럼 입에서 살살 녹고 달큼한 맛과 향이 입안에서 덩실거리고 있는 것이 신안 증도에서 먹던 수육이 생각난다. 한 마리 구입해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을 지인과 아내 덕분에 지금까지 두 번 맛볼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이었다.


민어는 온화하고 편안하면서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음식으로, 조용하고 느림의 삶이 있는 슬로 시티 신안 증도처럼 나에게는 슬로우 푸드이며, 소울 음식이 되었다. 이때쯤 느지막하게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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