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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인생 (Life with No Regret)-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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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


누나가 나가고 홀로 남겨진 순간 지극한 공포와 외로움이 엄습했다.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그렇게 혼자 남겨진 적은 없었다. 늘 가족이나 친구가 곁에 있었다. 다섯 명 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하나같이 예쁘고 귀여웠다. 그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외할머니의 인자하신 미소가 떠올랐다. 인성아, 괜찮다. 조금만 더 참아라. 다 좋아질 거다. 모두 다 지나간다. 할머니가 그곳에 계셨다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것 같았다. 


며칠 전 모란봉에서 작별한 친구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철봉대 위를 나비처럼 누비던 시절이 아름다운 꿈처럼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희한하게도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노라니 배고픔도 가라앉고 두려움도 조금씩 물러갔다. 우리에게 다시 좋은 시절이 돌아온다면, 누이들과 가족들과 친구들과 모두 모여 앉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과거를 회상하며 파티를 열 수 있겠지. 꿈을 꾸고 소망을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지저분한 회색 벽들과 차가운 철창 위로 무지개가 반짝이는 상상을 했다.  


곧이어 내 순서가 왔고, 누나와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나를 심문한 담당관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는 커다란 야구방망이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잘 왔다! 거기 앉지.”


담당관의 표정과 목소리는 생각한 것보다는 우호적인 편이었지만, 비밀을 지닌 나로서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고여 축축했다. 

“난 말이지, 요즘 왜 이렇게 젊은 청년들이 남한으로 탈출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 북한의 청년들에게는 밝고 원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지, 너도 설마 남한으로 탈주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갑자기 야구방망이로 책상을 탕 치며, 냉소적인 말투로 물었다. 


“만약에 그랬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넌 곧바로 강제노동수용소행이야! 너도 잘 알고 있지? 넌 왜 해주에 온 거냐? 사실대로 말해!”

심장은 쿵쾅거리고, 목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하지만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누나와 모의한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저는 제 나라와 제 고향과 제 학교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떠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요즘 어지럼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해주로 내려가서 해산물도 많이 먹고 요양을 하고 오라고 해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너 얼굴 보니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네가 아프다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


내가 얼굴에 살이 없고 마른 체형이어서 아프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믿어주었다. 그런데 담당관은 나의 거짓말을 간파한 것이다. 당황하여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던 중, 불현듯 전날 밤 외할머니께서 내 셔츠 호주머니에 넣어주신 의사의 소견서가 생각났다. “이게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가봐라.” 할머니는 나를 위해 일부러 친한 의사에게 부탁하여 소견서를 받아둔 것이다. 


아침에 셔츠를 입으면서도 그 주머니 속에 든 소견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외투 속으로 손을 넣어 셔츠 주머니를 뒤졌다. 외할머니께서 곱게 접어 넣어준 소견서가 그 자리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나는 소견서를 심문담당관에게 내밀었고, 혹시나 하여 셔츠 주머니에 함께 들어있던 나의 학생증도 꺼내 주었다. 


 “식욕감퇴 및 어지러움 증상으로 당분간 학업을 쉬면서 요양할 필요가 있다….”

담당관은 소견서를 읽은 후 나의 학생증을 앞뒤로 돌려보았다. 당시에 학생들은 오늘의 운전면허증처럼 반드시 학생증을 소지하고 다녀야만 했는데, 학생증 뒷면에는 이전 학기의 성적들이 적혀 있었다. 그 성적표는 내가 우등생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소견서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나는 슬그머니, 나의 삼촌이 해주의 농업국장이라는 사실까지 언급했다. 삼촌은 해주에서 유명한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삼촌에 대한 말이 나오자 담당관의 태도가 완전히 누그러졌다. 


“뭐라고? 명국장님 조카라고! 이거 우리 부하들이 큰 실수를 했구먼! 내가 대신 사과하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더니 부하 한 명을 불러 나와 인옥 누나를 근처 호텔까지 호위해주라고 지시했다. 숙박비도 낼 필요 없다고 했다. 보안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어머니와 인자가 있는지 살폈다. 그들도 곧 우리를 발견했고, 우리가 경찰과 함께 호텔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천천히 우리를 따라왔다. 호텔 안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재회의 기쁨에 울고 또 웃었다.    

  

어머니냐, 탈출이냐


“인성아, 어서 일어나거라!”


따뜻한 호텔방에서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새벽부터 어머니가 우리를 깨우셨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잠은 한없이 달콤했다. 

“어서 나가서 내가 고용해둔 가이드를 찾아야 돼. 경찰서에서 누가 네 가방을 발견하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야지!”


‘가방’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머니 말씀이 맞았다. 누군가가 보안서 유치장에 남겨진 내 가방을 발견해서 내용물을 꺼내본다면…. 그 다음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우리는 얼른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어머니께서 가방 속에 넣어오신 떡으로 요기를 한 다음 호텔을 나섰다. 


어머니가 정옥이를 업고 앞장섰고, 우리는 일행이라는 걸 들키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어머니를 따라갔다. 해주역이 가까워질수록 간밤에 보안서에서 겪은 악몽 같은 사건이 떠올라 나의 심장은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새벽부터 기차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해주역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소달구지를 끈 농부로 가장한 가이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멀리서 소달구지를 몰고 오는 농부가 보였다. 허름한 한복 바지저고리 차림이긴 했지만 몸집이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근육질의 남자였다. 새벽빛에 이목구비까지 알아보긴 힘들었으나 어머니가 묘사한 농부의 인상과 닮았다. 남자가 모는 소달구지는 어머니와 인옥 누나와 인자를 지나 내 곁을 스쳐갔다. 그 사람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방향을 돌려 우리 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나를 앞질러 어머니 쪽으로 움직였다. 달구지 위의 남자는 어머니 옆을 지나가며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 위로 들어올려 크게 기지개를 한번 켰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농부가 확실했다. 원래 전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 그도 거의 밤늦게까지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새벽에 다시 나온 것이다.


왜 늦었느냐고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그저 묵묵히 함께 움직이기만 했다. 곳곳에 무장한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잠시 길 가에 앉았다가 내가 지나가고 나자 슬그머니 일어나 내 뒤를 따라왔다. 어머니가 뒤를 받쳐주니 든든했다. 


평소 양장에 롱코트, 모자와 가죽부츠 차림을 즐기던 어머니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허름한 치마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고 머리 수건을 둘렀다. 하얀 피부와 늘씬한 몸매, 당당한 걸음걸이 때문인지 어머니는 그런 옷을 입어도 여전히 멋스러웠다. 어머니가 굳이 어린 정옥이를 업고 온 것은, 보안 경찰과 군인들이 아기를 업은 여자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소달구지를 끄는 농부를 탈북자로 의심할 경찰은 없었다. 농부이자 어부인 가이드는 초소를 피해 요리조리 길을 잘 찾아갔지만, 바다가 눈에 들어올 무렵 한 떼의 보안 경찰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큰소리를 질러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그렇게 잡은 사람들을 총부리로 위협하며 질질 끌고 갔다. 인옥 누나와 인자는 바닷가 마을의 여자들처럼 누더기로 된 기다란 머릿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무사히 통과했다. 이번에도 내가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가이드가 나지막이 소리를 질렀다. 


“학생, 어서 도랑으로 숨어!”

아무래도 학생복을 입은 나는 의심받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소달구지 옆에서 걷고 있던 나는 지시대로 얼른 길 가 도랑으로 뛰어내려 납작 엎드렸다. 마침내 경찰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길 위로 올라와 안도한 것도 잠깐, 곧 경찰들이 정옥이를 업은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제발 놓아달라고 빌고 놀란 아기는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지만, 경찰들은 냉담했다. 그렇게 한번 잡히면 아무리 무고하더라도 보안서로 끌려가 심문 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풀려날 수 없는 게 상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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