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임의 뮤직라이프] 부도덕의 대표적인 산물 ‘바그너’ >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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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서동임의 뮤직라이프] 부도덕의 대표적인 산물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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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칼럼 리스트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의 낭만파 최고봉을 이룬 음악가는 바그너다. 그러니까 리스트 사위가 바그너 인 셈이다. 음악을 한 사람이라면 이노센트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남을 해치지 아니하고 성격이 올바르다. 행실만 가지고 평가해서는 곤란하나 일견 못된 짓만 골라가면서 한 부도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출생은 알쏭달쏭해서 이 사람은 좀 예외다. 바그너는 그의 생일날에 태어났다고 썼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아버지가 과연 누구였던가 명확하지도 않다. 그다지 음악적 재능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방탕한 생활로 퇴학 당했다. 

 

그는 교향곡 C장조를 작곡했는데 이것을 두고 슈만의 부인 클라라는 베토벤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라 비평했고, 멘델스존은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훗날 두 사람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불안정한 편력으로 실업과 취업을 되풀이, 러시아령까지 갔다가 빚쟁이들에게 쫒겨 야반에 국경을 탈출하기도 했다. 그 후 프랑스로 오다가 폭풍우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건 방랑하는 네덜란인을 작곡하는데 큰 도움되었다. 독일에서는 다행히 평판이 좋아 자신감을 가지고 귀국한다. 라인강을 보고 바그너는 조국에 성실할 것을 맹세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에 가담하여 독일 드레스덴에 파견되었다. 바그너는 적극적으로 혁명운동에 가담하였는데 그는 혁명을 지지하는 세력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왕정을 즉각 폐지하고 화페를 개혁하라!’ 혁명이 실패로 끝남에 따라 지명수배되었고 궐석 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 후 스위스로 넘어가 이후 9년 동안을 그 곳에서 보냈는데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음악면에서 거창한 구상을 했다. 희곡을 예술형식으로 정해서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탄생하였다. 비련으로 끝난 망명시대 쇼펜하우어 염세철학, 정신적 육체적인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또다른 작품으로는 탄호이저가 있으나 공연이 실패로 돌아가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뜻밖에 구원의 손길이 뻗쳤다. 국왕의 파격적인 후원을 받았으나 국고를 너무 낭비한다는 비난이 일어 스위스로 쫏겨나다시피 도망갔다. 그는 친구 리스트의 딸인, 무려 23세 연하인 코지마와 결혼했는데 제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를 가로 챘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는 분개한 나머지 그 후부터 죽을 때까지 바그너의 작품은 절대로 지휘하지 않았으며 누군가 그에게 바그너는 누구인가 물으면 이런 묘한 대답을 하던 일화가 있다. ‘나의 아내의 남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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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임 / 40년 멘토

Pianist, Accompanist
Performer,Teacher
RCM Elementary Specialist
RCM ARCT Performer
Master & Bachelor Degree
9년 뮤직 칼럼니스트 활동
밴쿠버 예술인 협회장
알레그로 앙상블 디렉터
알레그로 코러스 디렉터 

604.505.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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