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스러운 에콰도르의 국보급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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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피카소스러운 에콰도르의 국보급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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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22> 


에콰도르의 오스왈도 과야사민 (Oswaldo Guayasamin 1919-1999)을 모르고 그의 작품을 보면 피카소의 작품으로 오해하기 쉽다. 피카소의 영향을 받고 그 특유의 큐비즘 화풍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피카소> 라는 별명도 얻었고.


그는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구도시에서 태어났다. 케추아족 원주민 출신으로 목수인 아버지와 유럽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 어머니 사이에서 10남매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가난하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의 얼굴을 풍자 만화로 그려주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미술학교에 진학했고 여기서도 선생님의 얼굴을 우수꽝스럽게 그려 퇴학을 당했다고. 큐레이터로 일하는 그의 딸이 전해 준 이야기다.


과야사민이 15살 되었을 때 스페인에 내전이 발생했고 그 와중에 친한 친구가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해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미대를 졸업한 후 그려진 작품 <죽은 아이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카소도 젊었을 때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는 말라가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미술을 공부한 곳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그 시절 카를로스 카사헤마스란 친구와 단짝이 되어 늘 붙어 다녔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 지망생이기도. 이 둘은 의기투합해서 세잔느, 마네, 모네, 고흐, 드가, 고갱 등이 활동하던 파리로 향했다. 

몽마르뜨 언덕에 싸구려 하숙집을 얻었다. 그리고 여자 모델들을 고용했는데 카사헤마스는 제르멘느라는 여자를 좋아하다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젊어서부터 여자꼬시기에는 도가 튼 피카소. 장난삼아 제르멘느에게 작업을 걸며 친구의 질투심을 가볍게 즐겼다. 그런 후 혼자 바르셀로나로 귀국했다.


그 후에 파리에서 들려 온 소식은 심각했다. 카사헤마스는 자기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우울증에 빠져 술과 마약으로 세월을 보낸 것. 이에 피카소는 친구를 스페인으로 불러 들여 여기저기 같이 여행 다니면서 그녀를 잊게 하려고 노력 했다.


그래서 치유가 되는가 싶더니 카사헤마스 혼자서 다시 파리로 갔다. 거기서 작은 파티를 열고 제르멘느도 초청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카사헤마스는 갑자기 권총을 꺼내 그녀를 향해 쏜 후 자기의 관자놀이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1901년에 벌어진 일이다.


이 비보를 접한 피카소. 친구를 잃은 슬픔 이전에 그 둘을 갖고 장난 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큰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헤어나려고 작품에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그의 붓끝에는 칙칙한 푸른색 물감이 묻혀 있었다. 

죽음을 표현하는 푸르둥둥한 색. 그의 <청색시대>는 이렇게 시작하여 4년간 계속된다. 이 때 그린 <인생>의 두 남녀가 제르멘느와 카사헤마스. 아기를 안고 그 둘에게 곱지않은 눈길을 보내는 그 여인은 누군지…

1차 세계 대전 직후에 태어나 격동의 20세기를 꽉 채우며 살다 간 과야사민.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 전쟁의 참상을 그의 작품에 쓸어 담았다. 그는 예술가라면 마땅히 그 시대상을 작품에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독재의 폭력과 비극적인 결과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분노의 시대> 연작을 발표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펜타콘 회의I – V>. 아우슈비츠 학살을 주도한 독일 장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위협하는 듯한 포악한 장교, 라틴의 독재자,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가는 젊은이의 두 손에는 이미 붉은 피가 묻어 있고, 맨마지막 인물은 뭔가를 염탐하는 듯 섬뜻한 눈초리를 쏘고 있는 스파이 등을 묘사했다.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그림도 있다. 피카소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게르니카 Guernica>를 그렸다. 왼쪽 윗 코너에 불타는 집을 바라보며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스페인을 상징하는 황소, 창에 찔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말… 평화롭던 소도시 게르니카가 나치의 폭격으로 도시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1654명이 죽고 889명이 부상 당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이에 반해 과야사민은 스페인 내전으로 남편 아들 자식을 잃은 여인들의 슬픔을 그린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을 그렸다. 검은 상복을 휘감은 여인들이 드러낸 것은 해골 같은 얼굴과 뼈만 남은 두 손뿐. 여인들의 상복 길이와 작품의 비례는 관의 형태를, 일곱 여인은 일주일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남편과 자식을 잃어 살길이 막막해 진 아녀자들의 절규가 일주일 내내 들리는 작품.


말년에 들어서 과야사민의 예리한 붓끝은 사뭇 부드러워 졌고 강렬한 색채 역시 따뜻하고 온화한 정서로 변화되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 평화, 순수함을 담고 있다. 

이를 잘 말해주는 작품이 <어머니와 아이>. 결국 과야사민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절망을 그렸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포용하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존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과야사민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의 아들이 전해 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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