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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삶과 역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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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미가 있어서 무엇이든 재빠르게 배웠다 


<지난호에 이어서>

당시 한국인의 이민을 초청한 사람은 두 부류로, 국제결혼 한인여성(미군부인)들과 유학생으로 시작하여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미국 동포의 70%가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초청했던 사람들이고, 30%는 유학생들이 초청했을 것이라 했다.


약 90% 이상의 국제결혼 여성이 부모 형제를 미국에 초청하여 교육받도록 했고, 직업알선 또는 사업체를 마련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므로 미국의 한인사회의 절반이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연쇄 이민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주한인 이민사 2단계의 주역인 초기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952년에 결혼해 도미 후 1963년 워싱턴DC에서 최초의 ‘한미부인회’(Korean American Wives’ Club)를 창설했던 에드워드(한국명 송전기) 여사에 따르면 초기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이민 적응은 교육수준과 관계없이 영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는 후에 남편의 전근지 여러 곳에서 한미부인회를 결성하여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서 활동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한국의 딸>을 펴냈다. 이 책에 의하면,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대다수가 성격과 생활력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매우 강했고 진취적이었다. 


송전기 여사가 주동이 되어 활동했던 한미여성재단(한미부인회의 전신)의 회원들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부터 무학력자도 있었으나, 클럽활동을 전개할 때는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 것과 상관없이 교양, 경험, 성의, 열성에 따라 많은 일을 처리해 주었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의욕적이었고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또 눈썰미가 있어서 무엇이든지 재빠르게 배웠다.


해가 바뀌면서 회원들도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여성들이 단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초청되어 들어오는 한인들의 정착을 도왔다. 

한미여성재단 회원들은 어려운 일을 당한 한국 사람들에게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발벗고 나서는 희생정신이 강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됐다.


한 예로 1985년에 부동산사업을 하던 한미여성재단 회원 한 명이 대지를 클럽에 후원했다.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넉넉하게 살지 않아도 정부나 기타 보조기관에서 지원받는 것을 원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살림을 불려갔다. 또 힘들게 번 돈을 모아서 한국에 남아있는 친정 식구들에게 송금했다. 

한인여성 대부분이 인정과 의리가 있고, 솔직하고 정직하며, 무척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과 직장에서도 깨끗하게 정돈해 놓고 살았다. 미국음식도 잘해서 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손도 크고 인정도 많고 눈물도 많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 발 벗고 나섰다.


주변에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동포가 있다고 하면 그 동포를 위해 한마음이 되어 모금 운동 또는 여러 방면으로 돕기를 좋아했다. 또 샘도 많고 경쟁심이 강했다. 집안일도 잘하고 집안을 잘 꾸며 놓고, 집을 모임장소로 하여 한달에 한번씩 자기들끼리나 부부동반 친목을 다졌다. 

기쁜 일, 슬픈 일 등 경조사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남편들은 아내들의 한인사회와 주류사회 봉사활동과 함께 가정을 세심히 돌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을 미국에 알리는 문화사업의 지름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미국인 남편과 함께 자식들을 기르면서 미국 땅에서 살지만, 항상 떠나온 조국을 잊지 않았다. 쇼핑할 때에도 모국의 경제를 돕는 뜻에서 현대자동차와 같은 각종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남편뿐만 아니라 시부모 또는 이웃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한다거나 한국 사람들을 무시할 때는,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자세히 한국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5천 년 역사의 화려한 문화를 가진 나라이며 민족이라는 것을 재인식시키는 정말 애국심 넘치는 한국의 딸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나이든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고 살고 있다. 그들은 직장생활, 자녀교육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주말이면 부모를 교회로, 노인모임으로 모셔가고, 오는 일을 해오고 있다. 

부모를 모셔온 후부터는 집에서 음식도 두 가지 (한국 음식과 미국 음식)를 준비한다. 또 말이 통하지 않는 친정 형제가족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2004년 3월 뉴욕 무지개의 집 사회교육원에서 개최한 무지개 수련회(무지개 여성평화 대행진) 이후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그동안의 경험과 훈련을 바탕으로 이제 미국 전역뿐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사는 재외 국제결혼 여성들과 네트워킹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주류사회에 한국을 알리고 모국 대한민국과 미주 동포사회의 세계화를 위한 첨병 역할을 담당해오며 차세대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첫째, 가족과 이웃에게 한국어, 한국 음식, 한국 전통의상 등 한국문화를 현지 주류사회에 직접 전파해온 문화전령사들이었고, 둘째,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한국 정부와 한국인을 대신하여 보은 봉사활동을 펼쳐왔으며, 셋째,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어 미국 땅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한국인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게 꾸준히 교육해왔다.


한국의 전쟁 전후 한국 사회는 남성 위주로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몇 안 됐다. 초기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못 배운 것에 대한 한풀이를 자식들에게 기대하고 비록 영어소통이 부족했는데도 높은 교육열로 자식들의 교육에 앞장섰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면 직장을 두세 개 다니며 일하는 등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했다. 어쩌면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처음 미국 생활에서 한인여성들은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 속에서도 남편과 시집 식구들, 그리고 주류사회에서 원만하게 소통하고 미국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미국화’돼야 한다는 압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은 자녀들을 ‘한국화’시켰다.

한국말을 어릴 때부터 가르쳤고, 자장가도 한국말로 들려주었으며, 명절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김치, 된장국 같은 한국 음식을 먹이고, 돌잔치 생일잔치 때에도 한국옷을 입혔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한국교회를 데리고 나가고, 좋은 대학에 보냈다. 바로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미주 한인들과 정반대로 미국 자녀들을 한국식으로 양육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얼을 계승하게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메릴린 스트릭랜드(시애틀 연방하원의원)와 제이시 제튼(텍사스 하원의원) 같은 정치인들과 한국 동북아연구에 최고 학자인 챨스 암스트롱 박사를 비롯해 하워드 하인즈 같은 미식 축구선수뿐만 아니라 20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자랑스러운 한국 어머니들과 주한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 주류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민족의 당당한 후예로 목소리를 높이고 선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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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한미여성들의 미국인 남편들은 미국 유권자들로 아내와 자녀들을 포함해 상당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특히, 한미동맹 강화와 문화교류에 크게 이바지해오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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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나오미(Rev. Dr. Naomi Rogers)

★알칸사주 미국연합감리교 목사
★알칸사주 22회 Silver Haired Legislator(은발주의원)
★알칸사한인회 13대 회장
★월드킴와(World-KIMWA, 세계국제결혼 여성총연합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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